여름엔 짝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관해 많은 산문을 썼고, 그 애에게 보여줬다. 그중엔 그 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보여줄만한 버전의 이야기였다. 그걸로 노출 치료를 해보려고 했다. 어떤 날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습한 바람이 부는 날에는 되돌아갔다. 며칠만 참으면 괜찮아졌다. 그동안 인스타그램도 올리고, 글도 쓰고 담배도 피워보았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 애가 본 흔적이 남으면 그 애랑 연결된 것 같았다. 이런 건 나답지 않았다. 짝사랑은 내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비밀을 못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 애한테 연락하고 싶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그 애가 깨어있다는 걸 알아서 더 그랬다. 가끔은 연락을 했다. 안부도 묻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더 원하게 되었다. 그 애는 이미 나를 거절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애에게 아직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말을 소설처럼 읽고 지나가달라고도 했다. 그 애는 웃었다. 웃어주어 다행이었다. 그 애는 정말 철이 없었다. 다신 얼굴만 보고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해놓고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내가 그 애가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일단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애는 내게 또 새벽에 깨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벽에 깨지 않았다. 그 애가 나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심심할 때, 아무한테나 이야기하고 싶을 때, 원해진다는 걸 확인받고 싶을 때 나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그 애가 알았으면 좋겠다. 왜인지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들켜도 그 애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애가 몇 번 나를 불러냈었다. 한 번은 카페 가자고, 한 번은 술 마시자고 했는데 두 번 다 파토를 냈다.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땐, 그 애는 두 번 다 심하게 늦었고 숙취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만큼 내가 중요하지 않은 거겠지. 그 애가 누구를 중요하게 여길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애는 누구라도 원해서 실제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참 신경 쓰인다. 내내 신경 쓰인다. 그 애는 언제 정신을 차릴까. 나는 언제 정신을 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