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이 날뛰는 계절이라지만 3월에 태어난 나는 오히려 봄에 살아나는 것 같다. 이번 봄은 좀 더 각별하다. 호지가 매일 두 번은 내 멱살을 잡고 밖으로 나가 나를 숲에 들판에 데려다 놓는다. 흙에서 하루가 다르게 잔디가 자라고 꽃봉오리에서 잎이 피었다가 떨어져 흩날리는 과정을 전부 보게 한다. 다섯 살 난 조카를 만날 때마다 그새 쑥 컸음을 느끼듯, 도시 곁의 자연을 새삼스레 감각한다.
계절이 어떻게 다가오고 지나가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개 산책 시간에는 아무 시름도 없다. 아, 갑자기 호지가 없을 언젠가를 상상하며 삽시간에 슬픔에 잠길 때는 있다. 사랑한다는 건 깊은 슬픔을 계획해두는 일. 내가 그런 일을 스스로 또 만들었구나. 사랑을 멈추는 법을 여태 못 배웠다.
나무가 뿜은 것들을 최대한 내 몸 안에 집어넣으려고 숨을 깊이 쉰다. 밤이면 아직 으슬으슬해 어깨를 움츠리고 나갔다가도, 호지와 호흡을 맞춰 동네 동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몸이 후끈해져 외투를 거의 벗다시피 풀어헤친 채 귀가해 이마의 땀을 닦고 손을 씻는다.
며칠 전 오랜만에 데이팅 앱에 접속했다. 아무래도 살 만하긴 한가 보다. 외롭고 괴로울 때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주고받을 여력이 좀 생겼다 싶으면 어디 새로운 사람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렇다고 유료 옵션 한 달치를 결제할 만큼 간절한 건 아니고 무료 버전만 돌리고 있자니 감질났는데, 내가 뜸했던 동안 새로 만들어진 정책인지 일주일치 구독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이거다 싶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돈을 쓴다는 감각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소비였다. 뒤늦게 보니 서정과 함께 쓰는 공동 신용카드로 결제가 됐다. 아, 이건 내 돈으로 메꿔놔야겠다.
이번에는 나의 프로필에 ‘와이프 있는 기혼 폴리아모리’임을 보다 직접적으로, 명백히 기재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만남에 있어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일 수 있으니 이 부분이 불편하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나가시라는 의미에서. 이 앱은 기본적으로는 둘이 서로 관심을 보여서 매칭이 돼야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인데, 어떤 이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확인해보니 스와이프하면서 본 기억이 나는 트랜스여성이었다. 우리 둘 다 하트를 눌렀나 보네, 하며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그: 기혼자이시면서 왜 저를? ;;
나: 제 프로필 읽고 라이크하신 거 아닌가요?
그: 그냥 궁금하잖아요.
나: 혹시 불편하시면 저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 아무리 폴리라지만 기혼자인데 상대방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나: 폴리아모리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 그럼 뭔데요?
나: 여기서 짧고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려워요. 그치만 제 배우자가 권해서 다시 폴리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라고 말씀드릴게요. 방금 하신 말씀은 제가 만나고 있거나 만나온 사람들
의 주체적인 결정을 무시하는 무례한 말씀이세요.
그: 참나 불륜이랑 똑같다니까? 그걸 이해하는 게 완전 정신 나간 거지.
그: 퀴어끼리 혐오 발언 불쾌하네요. 잘 모르시면서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고, 지나가세요.
여기까지 얘기한 뒤 나는 차단을 당했다. 가슴이 답답했는데 더 입씨름하지 않아도 되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역시 퀴어들도 혐오하는 폴리아모리!
그래도 이런 일만 겪는 건 아니다. 같은 폴리아모리라 반갑다면서 나에게 슈퍼 메시지(일방적인 호감만으로, 그러니까 매칭되지 않아도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한정 수량의 귀한 옵션이다)를 보내온 연상녀도 있었다. 우리는 카톡으로 창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프로필에 특별한 정보가 없어서 어떤 스타일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던 이인데, 나와 꼭 친해지고 싶다며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조심스레 나눠주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심이 걷히고 마음이 열렸다. (어쩌면 이게 나의 문제일까?) SNS 등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인간을 판단하고 파악하는 일에 대해 점점 겸허해진다. 나는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그런데 나는 실제로도 이상하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그와는 다음 주 토요일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될지, 친구가 될지,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무어든 우리에게 걸맞은 관계가 되겠지. 부드러운 봄바람이 이끄는 곳으로 또 가보기로 한다. 그렇잖아도 알 수 없는 미래에, 슬픔의 가능성을 하나 더 열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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