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구함



*<걸어서 요지경 속으로>에 연재하는 산문을 옮겼습니다. 연재명은 '롤리폴리'이며 이 글이 마지막 연재 글입니다.



꾸준히 낯선 여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따금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친구가 되어 다음 만남을 기약한 이는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파트너는 없다. 그래도 계속한다. 모르는 여자와 만날 약속을 또 잡았다. 아내도 있고 반려동물도 둘이나 있으면서 이러는 에너지가 대단하다고들 주위에서 말한다. 최근에는 이 나이에라는 수식까지 붙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모처럼의 무직시즌이다. 재택근무를 하던 아내는 다시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됐고, 연지와 호지는 매일 한나절이 넘어가도록 잠을 잔다. 외주로 들어온 일은 고객사의 사정으로 원고 수급이 지연되고 있다. 세미 주부 생활도 바쁘긴 하지만 바깥세상을 두리번거릴 여력은 있는 모양이지? 나도 가끔 내가 무섭다.

 

새롭게 알게 된 누군가와 꼭 로맨틱/에로틱한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지 않더라도 내 시간이나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은 안 한다. 친구는(특히 퀴어 친구는) 다다익선이다. 그저 나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좋다. 스쳐가는 인연이어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나라는 상품의 잠재 고객으로 여기는지도. 조금만 성의가 있어도 특정할 수 있도록 데이팅 어플 프로필에 내 정보를 오픈해서 그런지, 내가 책을 냈다는 걸 알고서 만나기 전에 찾아 읽고 와준 사람들도 있었다. 오프 덕에 내 에세이를 세 권 정도는 판 셈이니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의 오프 패턴을 분석해보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대개 나는 들어주는 역할을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맡아버린다.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돌이켜보면 여태 여러 인간관계를 그런 식으로 맺어왔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데이팅 어플이 아니라 흡사 정치 유세 같은 걸 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연결되고, 알리고, 경청하고……. 거 참, 아직 흑심은 하나도 못 채웠는데.

원체 기꺼이 몰입해서 듣는 인간이라 그런 일이 고역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게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동화 <해님과 바람> 속 햇볕처럼, 스르르 내 입을 여는 사람과는 분명히 남다른 사이가 된다. 내 패턴을 깨주는 존재는 특별하게 각인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 나도 모르게 실컷 떠들어버리게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요지경 덕분에 몇 개월간 내 얘기를 이렇게나 늘어놓았다.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시간을 기억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켜 나를 열고 풀어헤칠 누군가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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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서정

    흑심..!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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