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건 ‘새해’라는 이벤트를 피하지 않고 맞겠다는 뜻. 그리고, 개가 왔다. 2026년보다 먼저. 내가 받아본 중 가장 찬란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따지자면 올해도 살짝 기구한 편에 속한다. 부정적으로만 느껴진다면 '다이나믹' 정도로 순화해도 무방하다. 언젠가 따로 풀고 싶은 이야기인 ‘정신병원 입원 쇼’가 있었고,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많아 신용대출을 받느라 신용 점수가 100점 이상 떨어졌고, 책이 아닌 온라인 콘텐츠를 만지는 일로 먹고살았고, 객식구와 식솔이 늘면서 ‘돌봄 중독자’라는 별칭을 얻었고, 섹스 파트너나 찾으려다 영양가 없는 짧은 연애들을 했고,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고, 친구의 간병을 도맡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절교했다. 소규모 지하 결혼식과 상하이 신혼여행 같은 꿈같이 즐거운 일을 벌이기도 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었고 대외적인 활동 같은 것도 거의 안 했다. 쓰기 동인 ‘무침’에 들어갔다. 쓰기 동료, 퀴어 동료를 더 사귀었다. 책은 여전히 사들이기만 하고 잘 읽지 않았다. 욕구불만을 자주 느꼈다. 대책이 더 없어져 상황은 심각해졌다.
살아남았다. 위기의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도.
예상보다 일찍 개를 데리고 오는 바람에 남들보다 먼저 새해로 와버린 것 같다. 보통 11월부터 달력과 다이어리, 사람들 줄 연말 선물을 준비하고 송년회를 기다리며 들뜨곤 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트리를 설치하고 전구 장식도 했는데, 올해는 연말 기분이 영 안 나고 뭘 할 의욕도 없었다. 기대할 일 없이 지루한 삶, 그건 내가 유독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지도. 덜컥 입양을 결정한 게.
제주 여행에서 스치듯 우연히 만난 아델이라는 개가 돌아와서도 한참 눈에 밟혔다. 마침 당시 아델이를 보호하고 있던 분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서로 팔로우해둔 터라, 신중히 고민한 끝에 메시지를 보냈다. ‘자꾸 아델이가 생각나요. 제가 입양해도 될까요?’ 우리 집에는 실질적 주인, 고양이 연지가 있었기에 구조자와 임보자는 합사가 잘 안 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입양을 전제로 하되 임보부터 해보기로 했다. 새 가족을 들인다는 생각에서 좋은 가족을 찾게 해주기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개에게도 좋은 일이니 노력했다. 그러던 중 최초 구조자로부터 입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갑작스러웠다. 1년 가까이 국내 입양이 되지 않은 대형 믹스견이라 해외 입양을 알아봤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아는 분을 통해 마치 대입 청탁 같은 걸 하듯이 아델이를 ‘해외 입양 우선’ 리스트에 어렵게 넣었다고. 국내 입양 희망자가 나타났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불쾌해했다는 말은 임보자에게 따로 전해들었다. 개 좋으라고 입양을 보내는 건데 인간관계에 휘둘리고 있다고, 뭘 위해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고 그 구조자와는 연을 끊을 거라며 나보다 더 화를 냈다. 어쨌든 국내법상 개는 ‘소유물’이라 구조자가 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창자가 녹는 기분이었다. 보름 정도를 개 생각만으로 살았다. 필요한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느라 하루가 짧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상상 임신에 출산 준비까지 하고 있는 꼴이었다. 헛된 꿈을 꾼 벌로 유산이라는 비극을 맞이한 것 같았다. 아델이에 대한 미련이 덜어지지 않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나는 다른 개를 물색하기로 했다. 아델이 눈빛에 마음이 흔들려 개와 함께하는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거였는데, 이제는 무조건 개를 입양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미 개를 가족으로 들이기로 마음 먹어버린 이상,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다소 부적절한 정신 상태에 돌입했으니 이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비유밖에 들지 못하겠다. ‘불금엔 치킨’이라는 말은 들은 순간 위장은 벌써 치킨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는데, 금요일이 되자 아내가 나와의 치킨 약속을 까맣게 잊고 야근을 하는 바람에 뒤늦게 다른 메뉴로 대충 때우게 된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상상으로도 실망스러운데, 이와는 비할 수 없는 좌절감이 밀려와 견딜 수 없었다. 출산 준비의 끝은 출산이어야만 했다.
이미 고양이 연지를 데려온 경험이 있는 나는, 동물 중에서도 통하는 애, 왠지 끌리는 애, 그러니까 ‘연’ 같은 게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설사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도 아무 개나 맘대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자꾸 눈이 가게 만드는 그 신호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웹과 앱을 가리지 않고 국내 유기동물 보호소를 샅샅이 뒤져봤다. 귀여운 개, 불쌍한 개가 넘쳐났다. 그걸 다 보려니 괴로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혹시 부부 관계가 소원해져서 더 애 갖고 싶어 하는 뭐 그런 거 아니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라는 대답은 안 나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래야만 내가 산다는 게 분명했다. ‘개가 나를 돌봐줄 거야.’
고양이인 줄 알았다. 보통 개가 갖기 어려운 능력치로 절실히 철창을 매일 기어오르다 떨어지는 아이. 주인을 찾았는데 동물 등록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다시 버려진 아이. 하남시 유기동물 보호소 계정에 사진과 동영상이 몇 개 있었다. 당장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하며 일정을 확인해보니 제일 빠르게 가능한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우리는 가족이 되겠구나, 직감했다.
매일 포기하지 않고 철창 탈출을 시도하느라 슬개골이 상한 진도 믹스. 그러는 바람에 보호소에서 유실 위기까지 왔다는 그 애를 직접 보았다. 앙상하게 말라 엉덩이 뼈가 다 드러났다. 도저히 그곳에 더 있게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두 번은 보러 와야 입양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에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재방문하겠다고 하고 온갖 서류를 미리 작성했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을 네 번 갈아타고도 택시로 이동해, 신림에서 하남 미사리까지 산 넘고 물 건너 개를 만나러 갔다.
그렇게 호지가 왔다. 인연을 맺은 가지라는 뜻의 이름인 연지와 같은 ‘지’ 자를 쓰고, 앞에 서로 ‘호’자를 붙여주었다. 함께한 지 일주일째, 하루 세 번 산책에 적응하느라 나는 하루에 두 번은 뻗어서 낮잠에 빠지는 사람이 됐다. 사흘 넘게 밖에 나가지 않고 지내본 적은 많았어도 매일 두 번 이상 밖에 나가는 일상은 계획한 적이 없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만이 계획인 나에게 한 가지 계획이 생겼다. 언젠가 이 집에서 이사를 갈 때는 꼭 주차 공간이 있는 집으로 가서 중고차라도 끌어야지. 연수 받고 장롱 면허에서 탈출해 호지를 편하게 데리고 다녀야지.
연지와의 성공적인 합사를 위해 각자의 공간을 분리해 펜스를 설치하고 호지의 슬개골을 위해 커다란 펫러그를 깔았다. 집 안 전체가 물리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매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게 호지와 연지에게 더 좋을지 고민하며 온갖 영상을 보고 한 시간씩 GPT와 상담을 한다. 호지만 돌봐도 하루가 가버린다. 그렇게 보고 싶던 조카 생각이 덜 난다. 그리고, 피곤하다. 내가 호지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가도록 이끈 아델이는 나보다 훨씬 유능한 보호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숲과 들판이 있는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뛰놀 미래가 아델이에게 주어질 거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새해에는 새 삶을! 비웃지 마시길. 진작에 시작됐으니까.
* 추신. 이 글의 내용은 호지에게는 영원토록 비밀이다. 협조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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