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 기다리는 나날

요즘 다들 우울증 맥스인 것 같다. 다들? 다들은 누구지? 아무튼 둘러보면 죽고 싶다 어떻게 살지 뭐 이런 소리가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근데 나는 마음 먹으면 활기가 넘치고 정신병 같은 거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밝고 사회적인 어른으로 굴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세상에 생떼를 쓰며 그저 죽을 생각만 할 수 있다.  문어 빨판처럼 소름 끼치고 징그러운 년. 도무지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요구하는 신생아. 정말 사람 질리게 하는 나. 제일 크게 질색한 사람도 나.

고양이와, 아기와 매일 사랑을 주고받아도 부족해서 강아지를 임보하기로 했다. 원래 입양할 생각이었는데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인해 일단 임보자로 강등되었다. 개와 얼마나 지내게 될까? 한 달? 일 년? 평생? 알 수 없다. 나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일단 강아지가 오기 전까지 임보자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다시 먹어야 한다. 마음을. 미래의 슬픔을 획득하다. 마음을 찢으며 선택하다.
사랑받는 것만큼 끝내주는 일이 없으니 강아지가 오면 잘해야지, 잘 보여야지. 어디서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개가 되도록, 그래서 끝내주게 사랑받으며 살 수 있도록.

뭘 해야 덜 억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욕구불만과 공허함으로 분노하며 매일 하루를 마무리한다. 얌전히 자는 날은 체념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슬프게 잔다. 그러고 나면 또 시작된다. 새 하루라는 것이. 이메일로 날아든 원고를 교정교열하고, 아기와 놀아주고, 눈 좀 붙이고, 밥 먹고 그러면 하루가 다 간다. 매일 반복하면서 목숨을 붙여놓는다. 언젠가 자유 죽음을 택할 것이다.

상담은 언제 관둘 수 있을지. 내가 왜 못 관두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그냥 잠수 타도 누가 어쩔 수 없는데, 상담사가 종결을 이야기하기 전까지 끌려다닌다. 나는 아직도 못 미덥고 항상 노파심을 일으키는 내담자다. 가까웠던 이들과 더 멀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 아직도 뭐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쓸데없는 것들. 살아 있는 동안의 숙제는 기꺼이 읽고 쓰기.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고 했던가? 망할. 그게 내가 생존한 이유인가 보다. 정말 신경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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