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깅 댄서 러브란은 두 손을 잡은 채로 양팔을 뒤로 넘겨 돌린다. 다채롭고 현란한 그의 무빙 가운데에서 내가 제일 동경하는 동작이다. 왠지 그는 요가를 매우 잘할 것만 같다. 저런 어깨는 아플 일이 없겠지? 미국을 여행하며 춤을 추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목 부상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송출된 적 있다. 툭하면 목이 굳어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나조차도 그게 어떤 아픔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늘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 나와 같은 신체 부위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분명히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말 대신 먼저 굳는 나의 목, 어깨. 스트레칭 대신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이게 내 운동이다.
부자처럼 돈을 쓴다. 얼마인지도 모르고 카드를 긁는다.
정신건강에 들인 돈이 삼천만 원을 넘긴 뒤부터 나는 나를 위해 지불한 값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거면 지금 ‘가진’ 빚을 갚고도 남는데 정신병이 빚을 유발한 면도 있을 테니 이게 더 큰 위기를 모면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욕하지 않는 어른으로 살기에는 글렀다. 그래도 어린아이 앞에서는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가끔은 그게 기만 같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욕하지 말라고 가르칠 자신이 없다. 타인의 면전에 대고 하면 안 되지만 혼자서는 할 수도 있지 않나. 안 그러고 어떻게 살지?
나는 운동하기 싫고 절약하기 싫고 일찍 자기 싫고 디저트 안 먹기 싫고 바른 자세로 앉기 싫고 하여튼 건강한 생활에 가까운 건 모조리 하기 싫다. 항상 모범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지만 이젠 그래도 하기 싫은 일들을 가끔, 정말 조금은 하기도 하면서 어른됨을 수행한다. 오늘은 간만에 저속노화밥을 지었다. 병아리콩, 렌틸콩, 특등급 고시히카리 쌀, 가바찰현미, 국산 유기농 귀리가 한 컵씩 들어갔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서 구매한 사람이 나라니,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하는 주부 9단 같다. (편견 좀 가지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편견을 가져본다.) 밥솥의 메뉴에서 잡곡밥을 선택했다. 이 잡곡밥에는 거창하게도 저속노화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나는 그저 맛있어서 해 먹는 거라고, 기회만 있으면 강조한다. 내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방어라도 하는 것처럼. 나 하나만 생각하면 이보다 더 밥을 안 할텐데 우리 집에는 나보다 자주 배가 고픈 사람이 한 명 있어서 그를 생각하며 밥솥을 씻었다. 이제 밥 냄새가 풍겨오고 이제부터 뜸 들인다는 멘트가 나온다. 혼자 살다가 처음으로 결혼할 사람과 살기 시작했을 때, 자취하며 오래 쓴 밥솥을 버리고 새로 사려고 알아보면서 압력밥솥의 가격이 얼마까지 비싸질 수 있는지 알았다. 알면 알수록 밥솥욕심이 생겼지만 형편에 맞는 걸로 샀다. 밥솥욕심이라니. 자본주의는 사람을 아주 욕심꾸러기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때때로 모든 노력이 소용없게 느껴진다. ‘모든’이 편향되고 과한 사고임을 알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제나가 아니라 때때로임에 만족하라.) 그 누구도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달 수영 신청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SNPE 수업을 신청했다. 토요일, 그러니까 내일 모레에는 신림체육센터에 갈 것이다. 시를 쓰려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