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언젠가부터  열받을 때 코노 가는 게 습관이 됐다.
예인과 같이 못갈 땐 혼자라도 간다.

이 얼마나 건전하다못해 패배적인지..
팔뚝질도 안 하고, 구호도 안 외치고, 공론화도 안 하고, 너죽고 나죽자며 싸우지도 않고,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시고 폭식도 거식도 자해도 자살도 안 하며

얌전히 걸어서 신문지 몇 장도 못 펴놓을 작은 노래방에 들어가서
돈 주고 산 시간 만큼 노래를 고래고래 실컷 부르다가
자기 연민도 좀 하고 세상 욕도 좀 한 다음에
음 이 정도면 피곤하고 목도 아프니 이만 가야지... 라며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어김없이
출근

이러려고 태어났어?
찍 소리도 못하고 코노 가서 노래나 부르려고 태어났냐고?
...

오늘은 30분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곡은 애창곡 중 하나인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로 했는데,
어쩐지 자꾸 어리석은 나의 입을 잠그고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어린 날의 꿈을 조용히 서랍에 넣고 닫는
그 패배주의적인 노래가 갑자기 너무너무 싫어서
이걸 마지막 곡으로 부르면 안 된다 싶어서
돈을 더 내고 몇 곡 추가로 불렀다.

그리하여 고른 진짜 마지막 곡은 중학교 때 즐겨불렀던 DJ DOC의 L.I.E
후렴구엔 욕과 욕밖에 없는 노래...
내 입을 닥치게 한 너희는 악마 닥쳐라! 좆까라! 저리 꺼져라!

한참 열심히 부르다가 이걸 부르는 중학교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웃겨서
그냥 껄껄 웃음이 났다

노래방에서 서랍을 닫으나 욕지거리를 날리나
대체 내일 아침 출근을 한다는 점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지..

집에 올 땐 런데이 프로그램 6회차인가를 들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만 더 달리면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럼에도 달리랄 때 달리고 멈추랄 때 멈추며
열심히 뛰어왔다.

오는 길에 복숭아 한 팩을 사왔다.
복숭아 6개에 3500원
세일한다고 써있었는데 사실
원래 복숭아가 얼마인지 모르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그게 저렴한 건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제가 왜 그래야돼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우스우세요?
책임은 저만 지나요?
왜 편한대로만 하려고 하세요?
제 얘기 들어본 적은 있으세요?
사람들이 그걸 모를 것 같으세요?
라는 말도 없이

아주 안전히 노래를 부르고 뜀박질을 하고
화냈을 때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게 만든 다음에
달달한 복숭아를 먹고
냉수 마찰을 하고 잠을 자면
무사히

다음 날

일어나서
어김없이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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