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다. 마침내 그렇게 됐다.
돈이( ) 명예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의미, 가치, 보람이라고 믿은 어떤 것을 붙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거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을 세상은 귀신처럼 알아본다. 여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오해, 이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오만. 쓰고 버리기 딱 좋지. 내가 바보처럼 열심을 다할 때는 빠져( )갈 구멍조차 막아버리고 붙잡더니, ‘( )도 당신과 동등한 인간이며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내비치자, 순식간에 내쳐졌다. 일종의 괘씸죄였다. 견딜 만큼 견디다 애인에게 이별을 고했는데, 그가 하도 애원하는 바람에 친구로 지내주던 어느 날, 갑자기 그쪽에서 ( )를 차단한 상황을 겪은 기분이다.
현실은 더 처참하다. 그 회사는 내가 해놓은 일들 중에서 탐( )는 건 ( ) 몰래 빼돌리고 ( )머지는 다 내 손으로 직접 갖다 버리도록 했다. 내 말의 함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어떤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선해해보았다.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는 더 이상 해명하지 않았다. 싸우는 데 지쳤다. 자기 손에 절대로 피 안 묻히며 고상 떠는 사람들만 이 바닥에서 결정권자로 살아남는다. ( )는 고작 핏덩어리다.
얼마 후 거기와 형제자매 격인 회사에서 부당해고 당했음을 공론화하는 글이 내 타임라인에 떴다. 그곳에서 장기근속한 디자이너였는데, 대표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 해서 잘렸다( )? 어디든 똑같다는 생각을 249번째 한다. 동시에 저렇게 공개 대응할 수 없는 내 처지에 입이 쓰다. 혀가 검어진다.
정신과도 상담도 내담자 경력이 5년을 넘어서 6년이 되어가는데 삼천만 원에 육박하는 ( )의 정신머리는 ( )아지는 게 아니라 더 ( )빠지고 있다. 약의 종류와 용량이 계속해서 최대치를 기록한다. 약만 챙겨 먹어도 하루가 바쁘고 배가 부르다. 어쩌면 이것도 약간 페미니즘 같은 것일까? 몰랐다면 덜 괴로웠을지도 모를 빨간 약의 세계. ( )를 알아간다는 게 이렇게( ) 위험한 선택인 줄 몰랐다. 내가 이 정도까지 미친년인 줄은 몰랐다는 얘기다. 의사와 상담사는 기어코 내 입에서 몇 마디라도 끌어낸다. ( )는 흩어진 조각들 중 덜 수치스러운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적당히 보여준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수치스럽다. 의사와 상담사는 거기에 일말의 책임을 지는 척하지만 내가 낸 돈 그 이상은 아니다. 책임을 진다? 원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 )는 믿는 쪽을 선택했고 그들을 금세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또 사랑하는 것 같다. 와, 놀랍도록 지겨워. 이것은 ( )의 패턴. 이 패턴으로 옷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전부 사랑해버리면서 ( )에게는 절대로 곁을 내어주거( ) 정을 붙이지 않는 ( )는 가끔 쓸데없는 걸 궁금해한다. 묻지 않는 게 ( )았을텐데 싶지만, 소용없다.
왜 살아야 합니까?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비밀에 부치기를 바랍니다. 진실이 더 퍼지면 곤란합니다.
오늘은 ( )의 왼쪽 뺨을 세 대 때렸다. 오른쪽도 때리고 하여간 더 많이 때리고 싶었지만 ( )혼자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럴 수 없었다. ( )는 좀 혼자 있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벌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 )는 ( ) 아닌 누군가를 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요새 밤을 새워가며 교정교열 외주 작업을 하고 있는 책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 )는 그( )마 내 몸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다. 조직을 통제할 수 없다. 타인도 마찬가지다. ( )는 이 모든 것과 유리되어 있으므로 남을 탓할 수 없다.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족족 아니라고 답해 분위기를 좆창내고 다닌다. 그렇게까지 진실을 알고 싶은 건 아니었을 텐데. 으레 하는 인사치레인 걸 알면서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는 심보. 그래도 그들은 참 친절하다. “왜, 무슨 일 있어?” 하고 꼭 내가 진짜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건넨다. “잘 지내는 게 이상하지, 어떻게 잘 지내.” 달리 할 말이 없다. 이해하지 못한 듯 엉뚱한 데를 봤다가 돌아오는 눈동자와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보인다. 대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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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그( )저( ) 예인이 귀여운 귀 달린 모자 쓰는 계절이 돌아오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