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생산성 강박, 폭력, 혐오, 능력주의, 기후위기, 우경화 세상에서 30대 여성 퀴어 정병러가 살아가기 버거운 이유(운을 떼자마자 거의 얘기한 것 같지만) 중 치명적인 하나는, 바로 내 몸뚱이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모품인데 AS도 교체도 할 수 없다. 낡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거나 고장난 데를 어찌저찌 처치할 순 있겠지만 거기엔 자원이 든다.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10월 14일 월요일 아침 10시, 희미하게 정신이 들자마자 강렬한 감각에 휩싸였다. 통증. 밤새 두드려 맞은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조각조각 아팠다. 욱신거리고 쑤시고 당기고 시리고 결리고 뻐근하고. 끙끙대며 누운 채 뒤척이다가, 힘은 없고 무겁기만 한 몸을 겨우 일으켜 침실 밖으로 휘적휘적 나오기까지 두 시간 넘게 걸렸다. 그러고서 또 한참을 허비하다 책상에 앉았다. 구글 캘린더를 열어서 이 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확인해보니, 당연히 있고 역시나 여러 개임... 집 밖에 나가는 일정까지 있다니 한숨이 크게 나왔다.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뭐.
어른 된 마음가짐으로, 작업해야 할 파일을 열어 살펴보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미간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내게 된다. 고개를 상하좌우로 천천히 움직여도 보고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쿵쿵 두드려도 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특히 오른쪽 목과 어깨와 등에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내 몸은 ‘그저 가만히 존재하기’조차도 못 하겠다고 야단이었다.해야 할 일의 양과 남은 하루를 생각하면 잠시도 여유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손가락이 검색창에 ‘안마’를 쳐버렸다. 며칠 전에 “마사지 받아봤자 그때뿐이잖아”라던 나는 한순간 태세를 전환했다. 일단 당장의 고통이라도 다스리지 않으면 더 나쁜 하루, 혹은 이틀 사흘 나흘을 보내게 될 게 뻔했다.
이동 경로를 고려하여 그 사이에 위치한 안마원을 다 뒤졌다. 다양한 잔병 경험 덕분에 용한 병원을 잘 찾는 능력을 습득한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병원 코디네이터’로 불린다. 최근에는 한의원까지 뚫는 데 성공하였다. 이 능력이 마사지 분야에도 통하려나? 일단 ‘스웨디쉬’ 등 지역을 나타내는 말이 붙은 곳은 제외. (성매매 업소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아로마 테라피’ 같은 표현은 있는데 ‘지압’이라는 말을 써놓지 않은 곳도 제외. (손가락만큼 트리거 포인트를 정확히 조준할 수 있는 안마 도구는 없다.) 체인점도 다 제외. (평타는 치지만 대단히 만족스럽지도 않다.) 국가공인안마원은 포함. 이 단계까지 살아남은 곳들의 리뷰나 평점을 쓱 훑고 결정했다. 갑자기 두뇌가 빠릿빠릿 돌아서 총 10분도 안 걸렸다. 죽고 싶다던 나는 어디로 가고 ’제발 살려줘‘의 심경으로 즉시 예약 후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기억에 잘 남지 않는 애매한 상호명, 너무 오래돼 색이 허옇게 날아간 간판,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계단, 벨을 눌러야 열리는 문. 음 오케이. 이건 모 아니면 도다. 그래서 어땠냐면?
인생 안마사를 만난 것 같다. 내 육체를 조지러 온 나의 구원자. 내 생애 가장 아픈 60분이었지만 너무 뭉쳐서 딱딱하게 만져지던 부위가 사라졌고, 뼈는 거의 재조립되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 된 나는 당분간 자주 ‘엄 선생님’에게 내 몸을 맡길 요량으로 그의 개인 번호를 은밀히 땄다.
편두통, 수면무호흡, 불면증, 기립성 저혈압, 다래끼와 구강 내 염증, 포진 등의 바이러스, 우울증을 베이스로 한 각종 기분 장애, 만성위염 등의 소화기 장애, 허열(기력이 쇠하여 시도 때도 없이 과하게 땀을 흘리는 증상) 등으로 인해 서양식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도움받고 있다. 운동을 하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최근 건강 상태로는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서 그나마 적성에 맞았던 필라테스도 쉬고 있다. 그렇다면 이 답보 상태에 필요한 건 바로 이거다. 엄 선생님의 극강 지압 안마! 이번 주 금요일, 나는 또 그를 만나러 간다. (어제 만나고 왔다.)
몸에 기운이 없다 보니 모든 일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져 정신도 시들어간다. 근데 죽는 것도 일단 살아야 할 수 있지 않나? 일단 살고 본 다음에, 그때 가서 또 생각하자.
,
안마 선생님 저도 만나고 싶습니다 어깨가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