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리얼 킬러

며칠 전, 몇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상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연달아 두 번째로 전화가 울릴 때, 나는 순간 엄마가 죽었나? 했다. 터무니없는 비약이지만, 나에게 엄마 죽는 일이란 늘 그렇게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일.

예인이는 가끔 죽고 싶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예인이가 죽는 상상을 한다. 그쪽이 좀 더 견디기 쉬운 편인 것 같다. 익숙해서 편안한 파국화.

같이 <대도시의 사랑법> 보고 갑자기 추억뽕을 맞아서 이언희 감독 데뷔작 <...ing>를 다시 봤다. 마지막에 우리 둘 다 눈물 말리기에 실패해서 또 울었다(하룻밤에 두 여자를 두 번씩이나 울리다니... 이언희 감독 규탄한다).

예인이가 갑자기 나 고생 안 시키려고 안 죽겠다고 했다. 처음 한 말은 아니지만, 진짜 믿음이 갔다. 죽고 싶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으라, 고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은밀한 욕심으로 예인이가 삶을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넌 그렇게 하고 있냐고? 정신병자끼리 그런 거 묻는 거 아닙니다..)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얼마나 가혹한 세상인지 생각하면 살아야 할 이유를 단 하나도 꼽을 수 없지만.. 보고 싶은 세상이 있고,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어서 살아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게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언정. 나도 같이 계란을 던져주면 견딜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내가 계란을 던지고 있나? 요즘 구직에 너무 쪼들려서.. 잘 모르겠네.)

자기 전에 내일을 생각하니까 확 짜증과 분노와 압박감이 밀려오면서 욕을 존나 했다(예인이는 요즘 내가 갑자기 욕을 개많이 한다고 한다. 맞다. 난 초딩 때부터 입이 더러운 편이라 롤링 페이퍼에 욕 좀 그만하란 말이 써 있곤 했다).

예인이는 나한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이런 실존적 고통은 원래 누가 도와줄 수가 없다. 돈 벌(어야 하)고, 먹고 싸고 자고 입고 씻고 청소하고 운동(해야)하고 쉬고 밖에 나가고 집에 들어오고 돈 쓰고... 나도 예인이가 자신으로 살아서 받는 고통에서 예인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은 되어줄 지 몰라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대신 두드려 맞아줄 수도 없다(얼마전에 소소한 호신용품을 사주기는 했지만...). 인간 원래 존나 너무 혼자인 것.

근데 난 예인이가 내게 정말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도움될 방법이 있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건 예인이가 해주고 싶은 것(돈 벌어주기, 요리 해주기, 집안일 하기..등등)이랑은 조금 다르다.

아니 물론 집안일 해주면 좋아.. 근데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그냥 아침에 씨리얼 먹고 싶다고 말하고, 도파인 충전하고 싶다면서 재밌는 거 보자고 하고, 나 웃기려고 갑자기 찬송가 부르고. 밥 존나 많이 먹고 '나 임신했어'라고 한 다음에 코인노래방 가서 과장된 애드립 넣으면서 노래 부르고, 소화 다 돼서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 먹자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세상 일에 분노하다가 무슨 북토크 가고 싶다고, 시창작 수업 듣고 싶다고, <최선의 사랑> 북토크로 전국 투어하고 싶다고, 집 사고 싶고 차 사고 싶다고, 그런 얘기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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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복

    존나 감동받으면서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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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서정

      에헤헤 저도 감동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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