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m
나는 서정이 나에게 조금만 뭐라고 해도 갖은 앙탈을 부리면서 나 좋을 대로 하고 넘어가는데, 서정은 내가 혼내면(살짝 낮은 소리로 한두 마디 하는 정도) 뿌앵 하고 울어버린다. 그러고선 금세 여보 잘못했어 용서해줘 그런다. 이미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마음인데 바보. 나는 선심 쓰는 척 알겠다고 한다. 뽀뽀해줘. 그가 용서의 증표를 요구한다. 마침내 미소를 보여주면서 쪽 입을 맞춰준다. 나사 빠진 애들처럼 히히 웃는다.
3pm
여보! 나 껴안고 낮잠 자고 싶다며 소파에 누운 서정이 부른다. 모든 관계에서 이름 부르는 걸 선호해 연인과도 애칭을 잘 쓰지 않던 나지만 서정이 시작한 자기, 여보 소리는 요상하게 자연스러워서 금방 스며들었다. 소파에서 서정을 뺀 좁은 자리에 폭 들어가 기꺼이 쿠션 역할을 한다. 내 등에 딱 붙은 서정의 배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부드럽게 나왔다 들어간다. 따뜻한 파도 위에서 나른히 넘실대는 나의 등. 점차 우리 둘의 호흡이 같은 리듬을 탄다. 일체감에 잠긴다. 마치 하나의 탯줄로 연결된 쌍둥이처럼. 살갗을 대고 있으면 찬 볼이 따끈해지고 더운 가슴은 시원해진다. 애초에 어디가 누구의 몸인지 무의미한,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는 주말 오후의 한순간. 성대를 쫙 붙이고 혀를 짧게 쓰며 말한다. 아, 죠와!
5pm
돌돌이 리필을 갈아 끼우고 소파, 캣타워, 개 방석, 내 옷의 털과 먼지를 제거한다. 돌돌돌.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새 모래를 뜯어 파스스 파스스 더 채운다. 치익치익 항균스프레이를 뿌린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개고양이가 자는 동안 청소기를 돌려야지. 개야 할 옷가지와 이불이 세탁망에 건조기에 쌓여 있다. 어디 보자 글도 써야 하고(쓰고 있지만), 음향 이론이랑 프로툴스 수업 복습을 해야 해. 공부를 더 미뤄선 안 되는데 공부라는 게 몸에 익은 적이 없어 여태 요령만 피운다. 저녁에는 개를 데리고 카페에 가려고 한다. 시간 낼 수 있을 때 최대한 개와 함께하는 일을 많이 만들려고 한다. 개는 직접 경험한 것만 꿈으로 꾼다고 하니, 기분 좋은 기억만 빼곡히 저장해주고 싶다. 내일은 아침에 필라테스 수업이 예약돼 있고 점심에는 조카네와의 점심 약속이 있다. 모레에는 친구로 지내는 전여친 한이가 우리 집에 개고양이를 보러 들른다. 매일 여럿에게 카톡과 전화가 온다. 나를 지척에서 둘러싼 미주알고주알러들과 그밖의 사랑하는 인간들. 질문들이 쉴새없이 내 앞에 놓인다.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의견을 내도록 하자. 존재의 해악을 최소화할 수 있게 선을 행하자. 그러려면 잠을 잘 자야 해. 돌봄노동은 내 삶의 일부다. 돌봄은 내 일부다. 그렇게 됐다.
그러나 집에서 실제로 제일 많이 하는 일: 누워 있기. 그런 내 엉덩이에 자기 엉덩이를 대고 내 무릎에 자기 얼굴을 턱 올려놓은 개. 이렇게 아찔하게 까무러치도록 사랑스러운 8킬로그램이 어딨냐. 최적의 온도와 촉감과 압력으로 나와 접촉하는, 살아 있는 8킬로그램. 동시에 끊임없이 아이컨택하며 말 거는 4킬로그램의 수다쟁이 고양이. 오감 서라운드 마인드풀니스 시스템이 짱짱하다.
헤헤 사랑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