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수 있는 사랑

우리는 함께 잠들려고 같이 사는 것 같다. 예인은 불면증이 심하고, 나는 기면증이지만 우리는 되도록 같이 잔다. 나는 거의 눕자마자 잠들기 때문에, 약의 작용 시간을 고려해서 침대에 눕기 30분 전에 예인의 취침약을 챙겨준다.

내 앞에서 옷 갈아입는 것도 부끄러워 하던 예인은 요새 덥다고 발가벗고 잔다.

"오예! 알몸 여보다!"

"이게 건강에 좋다며. 나 요즘 건강 챙겨."

"나도 그럼 건강하게 자볼까?"

침대에 누우면 팔을 예인 쪽으로 벌리고, 예인은 내게 말려오듯 굴러와 안긴다. 오래 떨어져있던 사람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우리의 몸은 서로에게 맞추어진 것처럼 잘 들어맞는다. 나는 예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과 팔, 가슴께에 몇 번 뽀뽀를 한다. 품 안에 퍼지는 예인의 더운 숨을 맞는다. 접촉면을 최대화한 채 끌어안는 순간. 내가 아는 느낌이 자꾸만 늘어난다.

나는 이 사랑을 분명히 만질 수 있다.


*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예인을 재워주기 위함이었다. 어플에서 만나 며칠간 연락하다가, 약이 있어도 잠을 잘 못잔다는 말에 대뜸 "내가 재워줄까요?" 해버렸다. 예인은 덥석 좋다고 했다.

연휴를 앞둔 저녁이었다. 예인이 예약해둔 ’무중력‘이라는 공간에서 만났다. 낡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지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입구에서 나를 맞이하던 예인은 까만 코트 위로 살짝 뒷짐을 지고 수줍은 듯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까딱해보였다.

김치찜을 시켜먹고, 내가 먼저 양치를 했다. 예인은 칫솔을 두고 왔다며 빌려달라고 했다. 내 칫솔로 양치를 하고 온 예인에게 물었다.

"키스하려고 양치했어요?"

예인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뭐, 해도 되고요."

카페도 밥집도 아닌 사적인 장소를 예약해두고 내 칫솔까지 빌려서 양치한 주제에. 뭘 믿고 그렇게 사사롭지 않은 거지. 그렇지만 내가 무슨 말을 던져도 빼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우리는 곧 소파에 눕다시피 앉았다. 예인이 요즘 빠져 있는 노래라며, 수지의 'Cape'를 틀었다. 수지가 이런 그윽한 발라드도 불렀었나. 예인의 얼굴을 찬찬히 훑으며 그가 무슨 말을 할 지 기다렸다.

"저는 남편도 있고 애인도 있는데 왜 라이크했어요?"

"글쎄요. 써드가 되고 싶었나보죠."

"풉. 한 번에 한 명씩만 만나봤다면서요."

"얼마전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저도 각각의 우주에서 아직 그 모든 여자들을 만나고 있더라고요. 한 우주에 한 명씩."

"저도 그 영화 재밌게 봤어요. 근데 그거 보고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처음이네."

"제가 좀 비약을 좋아해요. 아무튼, 예인이라면 제가 해칠 수 없는 사람 같았어요."

"사람을 해쳤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더 이상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딱 상처주지 않을 수 있을 만큼만 중요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왜요? 왜 그런 마음을 키우게 된 건데요?"

"비겁한 거죠. 착한 사람 콤플렉스인가."

"좀 비겁하긴 하네. 그래도.. 미래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러려나요. 더 이상.."

"그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건 아니니까."

뭐지. 어떻게 내 다음 말을 읽었지. 예인은 동의를 구하듯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상처주고 상처 받으면서 한 뼘이라도 자랐을 거잖아요."

"...외로웠겠어요."

"뭐가요?"

"그냥.. 그랬을 거 같아요. 폴리아모리 다들 안 좋아하잖아요. 게다가 헤테로 결혼까지 했으니까."

그 순간 예인이 내쪽을 바라봤다. 너 뭐야? 하는 듯이. 예인의 표정을 살피다 나도 모르게 예인 쪽으로 팔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안기고 싶은 거."

"몰랐는데요. 내가 안고 싶었던 건데..."

말없이 한참 예인을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그 순간에, 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이라면. 다시 이번 우주로 돌아오지 못해도 좋겠다고.


*


우리는 낮에 자주 졸렸다. 나는 기면증이고 예인은 밤에 잠을 잘 못잔 탓이지만. 데이트할 때에도 낮잠 시간을 확보해두었다. 예인은 이상하게 나랑 있으면 졸립다고 했다. 내가 잠을 옮긴다나 뭐라나. 우리는 한낮의 좋은 잠을 나눴다.

같이 잠들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깨어났을 때 여전히 함께라는 것도. 각자의 꿈속을 헤매다가 번번이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니까.

예인은 우리 집에 자주 와서 잤다. 슈퍼싱글 사이즈의 내 침대에서 우리는 엉겨붙어서 잤다. 잠드는 순간 만큼은 꼭 그렇게 했다. 아주 추운 바람을 맞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잘 때 우리는 가장 취약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동물들은 뇌의 반쪽으로만 잠을 자고, 어떤 동물들은 교대로 잠을 잔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 서로에게 더 취약해지기로 약속했다. 더 깊은 잠을 서로에게 주기로 했다.


*


팔 위에 느껴지는 머리의 무게. 익숙하게 왼쪽 다리를 양 다리 사이로 밀어넣고. 손끝으로 말 걸기. 머리카락. 목덜미. 어깨. 팔. 등. 허리. 옆구리. 세상의 전부인 듯. 파고들기. 입맞추고 입맞추는. 이쪽은 조금 차가워. 이쪽은 부드러워. 이쪽은 오돌토돌해. 내가 모르는 곳은 하나도 없지.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줄래. 네가 바라는 것을 느끼게 될 거야. 숨 가빠. 바빠. 빠짐없이 핥아줄게요. 우리 강아지가 나에게 하듯이. 완전히 열린 채로. 내가 바라는 것을 나는 이미 소유하고 있어. 그리워하는 냄새. 푹 잠겨버려. 아무 생각 없어요. 듣고 있어 맡고 있어 만지고 있어 들고 있어 밀치고 있어 삼키고 있어 쓸고 있어 누르고 있어 버티고 있어 안고 있어 잡고 있어 깨물고 있어 구부리고 있어.

표면의 열기. 좀 더 바깥 쪽으로.

언제나 여기로 돌아와.


*


우리는 서로 가장 아끼고,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됐다. 매일 같이 잠들고 일어나며, 저녁을 무얼 먹을지 의논하고, 집안일과 강아지 고양이 육아를 함께 해냈다. 가끔 돈 문제나 내 원가족 문제로 싸울 때면, 우리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두려웠다. 사랑하는 만큼 기대하고 원하는 일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는 걸까? 나는 예인을 만나기 전에는 애인과 단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건 내가 깨고 싶었던 무언가였다. 언젠가 나는 예인에게 싸우는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나 아픈 일인 줄을 모르고.

심하게 싸운 날 우리는 따로 잤다. 한 명은 소파에서, 한 명은 침대에서. 예인은 약을 먹어도 잘 자지 못했다. 나도 밤새 슬픈 마음으로 뒤척였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예인 없이 잠들면, 엄마가 자리를 뜨면 잠에서 깨는 아가처럼 자꾸만 깼다. 잠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재우나보다. 그냥 같이 잘 걸, 모른 척 안아버릴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예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밤새 각자 끙끙대다 만나면 우리는 더없이 애틋하고 미안한 채로 이해와 용서의 언어를 더듬거렸다.

모든 싸움은 포옹으로 끝났다. 포옹으로는 절대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없었으니까. 우리의 말들은 너무 취약해서, 제멋대로 방어하고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몸으로는 사랑밖에 줄 수 없었다. 자기 몸을 아낄 줄 모르는 우리지만 서로의 몸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다. 내가 사랑하는 신체. 그 자신보다 내가 더 잘 아는. 내가 안기고 싶고 안고 싶고 냄새를 맡고 싶은 그 몸을 사랑하는 데에는 말이 필요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해도 되는 말이 없어서. 내가 다 망칠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자꾸만 서로를 안았다.


*


아빠가 죽던 날, 우리는 설을 맞아 엄마 집에 갔다. 막 떡국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평소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전화를 받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노승률 님 따님 되시죠? 수원 경찰서입니다."

"네? 네.. 그런데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채로 발견되셨어요. 만나기로 한 친구 분이 집에 왔다가 문을 하도 안 열어주셔서 경찰에 신고했고, 저희가 발견했습니다."

"..."

"타살 정황은 없어보이는데, 정확한 사인은 저희가 판단할 수는 없어요. 우선 저희가 장례식장 알아봐서 인계 중인데, 수원으로 와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곧 갈게요."

잠시 목이 메었지만, 이내 몸이 비상 전원을 차단한 것처럼 무감해졌다.

밥맛 떨어지게 이게 무슨 소식이냐며 역정을 내는 엄마를 뒤로 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갔다. 이혼한 지 5년은 됐고, 그보다 오래 전부터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았던 엄마가 장례식에 올지 말지는 내 관심 밖이었다. 차라리 오지 않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게 뻔했다.

친구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휴대폰 잠금 화면 패턴을 평소에 봐두어서 풀어주셨다고,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치킨인 것 같다고 했다. 죽을 때 피가 안 통했는지 얼굴에는 시퍼런 멍 같은 게 크게 번져있다고 했다.

아빠 시신을 확인하겠느냐는 안치실 담당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염습하지 않아 발견되었을 때 상태와 같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내 안에서 계속해서 떠오를 이미지가 될 그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예인이 대신 다녀오겠다고 했다. 사진으로만 뵀으니 자기도 인사드리고 싶다며.

"힘드셨나봐. 미간에 인상 쓰고 계시더라. 조금 펴드렸어."

"잘했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평소 건강이라면 자신있어하던 아빠였지만 급성 심근경색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골든타임이 중요하다고.

자기가 가입해둔 상조를 쓰지 않겠냐는 고모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해주는 장례 서비스만 받기로 했다. 모바일 부고장을 만들어 돌리고, 제단을 정하고, 영정 사진을 고르고, 위패에 들어갈 이름을 한자로 할지 한글로 할지 따위를 정했다. 혹시나 아빠가 가입해둔 종신보험이 있는지 알아보고, 부검을 할지 말지 가족들과 논의했다. 낚시광이었던 아빠를 위해 납골당 대신 바다장을 하기로 했다. 집안 어른들은 다들 넋이 나가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정신 차리고 진행한 건 우리 둘뿐이었다.

우리는 오는 사람에게 아빠의 사인을 반복 설명하는 친구 분을 보며, 테이블마다 고인 사망 사유를 정리해서 써놓아야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뒤늦게 온 엄마는 누가 물어볼세라 예인을 내 친구로 소개하기에 바빴고, 큰고모는 입관 때 "누나를 두고 먼저 가냐, 이 개새끼야!" 하며 서럽게 울었다. 너무 웃겨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이를 꽉 깨물었다. 아빠는 교회를 안 다녔지만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꼭 유서 써둬서 이런 짓 못하게 만들자고 다짐했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에게 오랜 시간 부재한 아빠였으니까. 다만 입관 때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얼굴이 침습적으로 떠올랐다. 예인이 언제 그렇게 툭 하고 죽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문득 예인을 볼 때 이 순간이 마지막 얼굴이라면 어떡하지? 싶었다. 슬프면 슬퍼서, 기쁘면 기뻐서 아쉬웠다.

어떤 고단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예인을 품에 안는 일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잠의 한 중간에서 눈을 떴을 때, 다시 예인의 가슴이나 목, 등에 코를 갖다대고 체취를 맡으면 이대로 깨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다는 욕심이 들었다.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예인의 양압기 물통을 세척하고 물을 받아준다. 치익- 치익- 양압기 호스를 통해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양압기를 불편해하는 예인이 그냥 잘 때면 숨을 못 쉬어 컥- 소리가 난다. 예인의 얼굴을 측면으로 돌려 숨 쉴 통로를 확보한다. 다시 조용히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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