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 행사로 결혼식을 하다

서정네 회사에서 경조 휴가를 받기 위해 제출할 청첩장을 만들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행사를 기획하게 됨. 둘이 나름 또 개발자랑 편집자라고 사이 좋게 머리 맞대고 우리에게 맞는 핏의 온라인 청첩장 같은 것도 만들었다. 

[우리 신혼 여행 가게 해주세요] (지금도 구경 가능함.)

6월 18일 현장 사진들을 일부 올려보겠다(결연)... 벌써 8월이 되고 말았지만..
한 달 전부터 테무에서 엄청난 지출을 하였다. 빨간 꽃과 하얀 꽃(조화임) 그리고 장식 스탠드와 전자 촛불, 촛대, 냅킨, 서정이 옷... 답례떡도 주문하고 답례품 넣을 봉투도 사고 샌드위치도 장 봐서 만들고 서약서를 넣을 그럴듯하고 깔끔한 파일도 준비하고 반은 장난으로 자율기부함까지 마련했는데 진짜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준 손님들이 있었다.
스탭을 맡아준 친구들은 먼저 와서 준비하고 손님들이랑도 인사하고 사진 찍고 복작복작...
온라인 청첩장에 크레딧 있음. 사회 금개, 케이터링 지양, 현장 음료 제조 지운, 디제이 지향 !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줘서 고맙고 신났다. 의도한 건 아닌데 하객들 중에 시스젠더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네. 미친 여자와 퀴어들의 파티였죠.
르세라핌 The Hydra를 입장곡으로 틀고(이날 쓸 AR, MR 편집하느라 날밤 깠다) 커튼 뒤에서 (사실은 주방에서) 새카만 썬글라스를 쓰고 상당히 수상하게 등장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신하게 앉아서 각자 쓴 서약서 겸 편지를 읽었다. 당일에는 일하는 자아를 버리고 새 신부이고자, 서로의 편지를 공개하지 않았고 현장에서 처음으로 들었다. 서정이 우렀대요-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웃기고 뒤틀리고 선하고 아프고 빛나고 자랑스러운 우리 친구들의 축사. 구구 축사 개감동.. 정예인이 미래래 어머... 멀리 독일에서 건너온 진소의 축사는 사회자이자 친구인 금개가 대신 읽어주었다. 들으면서 이런 축복과 찬사를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그다음엔 서로에게 축가를 불러주는 시간. 각자 따로요... 노래자랑이냐고... 배틀이라고 하기에는 둘 다 노래를 못했지만 서정이가 또 우렀기 때무네 내가 진 것 같음. 선물 교환식도 했다. 나는 갖고 싶었던 향수를 받았고, 서정이가 안 써봤을 법한 필름을 다 다른 걸로 5개 준비해뒀다가 줬다. 십 년 전보다 필름값 열 배 뛰었다... 그걸로 여행가서 사진 찍었음. 나 찍으라고 준 거임.ㅎㅎ 신나게 퇴장하려는데 갑자기 키스 타임이라면서 뽀뽀 시켰다. 일부러 살짝 전형적인 포즈를 취했다. 신부 드랙쇼를 가장 즐긴 사람 나야.
식이 끝나고 자유로운 파티 타임. 영업할 거 있는 사람들 나와서 알아서 홍보하랬더니 하나둘 망설임 없이 나와서 본인의 신간이나 사업장을 홍보하였다. 멋있어. 흡족해. 이날 이 자리에서 가장 소수자 누구였냐? 시스헤테로이자 회사원인 유민과 지현 좀 뻘쭘하게 있는 거 웃겼다.
고마운 사람들밖에 없었다. 한 명 한 명과의 은밀한 사연들을 떠올리면 왠지 음침하게 재밌다.

여기에다 올린 사진은 모두 서정 친구 예린이 나의 캐논 카메라로 찍어준 것임을 밝힌다. 백범 그리고 보노 님을 비롯해서 다른 친구들도 각자 핸드폰으로 영상이랑 사진을 많이들 찍어서 공유해줬다. 여러가지 버전을 sns에도 차차 올리도록 해볼게요... 갈무리하니 감회가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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